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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현지 시각 오후 9시 20분, 프랑스 파리에서 끔찍한 연쇄 테러가 발생하였습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IS)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는 이 연쇄 테러는 무려 3시간 넘게 파리라는 거대한 도시를 끔찍한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습니다.

파리 시내의 한 술집과 외곽 축구장 인근에서 동시에 발생된 연쇄 테러는 3시간 가까이 이어진 바타클랑 극장의 인질극에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락 공연이 열리고 있던 극장에 소총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들이 들이닥쳐 관객들을 인질로 삼았으며, 이후 특수부대가 출동한 소탕작전 결과 관객 등 100여명이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테러리스트들은 이 극장안에서 조끼형 자살폭탄을 사용하여 자폭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2차세계대전 이후 파리에서 일어난 최악의 테러이며 6곳에서 동시 다발로 일어나 120여명 사망에 80여명 중상의 희생자를 발생시켰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테러는 목적과 정당성을 불문하고 수많은 피해자를 생산하기 마련입니다. 사실 테러는 조금만 찾아보면 이렇게 크게 벌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종 외신에 보도되는 뉴스들을 보면 중동과 유럽에서는 시시때때로 테러들이 크고 작게 발생해왔습니다. 대체 무고한 민간인을 희생시키는 이러한 테러들은 누가, 왜 벌이고 있는 것일까요.


지하드(성전, Jihād)


테러리스트가 발표하는 비디오나 글들을 보면 종종 그들은 "이것은 우리들의 성전(지하드)이다"라고 당당하게 외칩니다. 지하드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그들에게 총과 폭탄을 들게 하는 것일까요.

지하드는 [아랍어] 자흐드(jahd)에서 유래된 단어로 ‘성전’, 즉 이슬람을 다르 알 하릅(dar al-Ḥarb, ‘투쟁 또는 불신자의 주거지’로 묘사되는 비이슬람 영역)으로 확장시키거나 위험에서 이슬람을 지키기 위한 종교 전쟁을 뜻합니다. 성년이 된 모든 남자 이슬람교도는 지하드에 참가할 의무가 있다고 이슬람교법에 규정되어 있는데, 참가자에게는 전리품의 분배가, 순교자에게는 천국이 약속된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기독교나 천주교의 미션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좀 의미가 더 거대하지만요.



최초의 지하드

지하드가 익숙치 않은 사람이라도 알 수 있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은 바로 십자군 전쟁입니다. 

과거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을 두고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유럽의 서방국가들이 펼쳤던 이 길고긴 전쟁은 이슬람인들에게는 바로 지하드 그 자체였습니다. 자신들의 종교와 반목하는 이들과의 전쟁이었으니 말이죠. 지하드란 단어가 본격적으로 나온건 2차 십자군 전쟁에서 이집트의 술탄 살라딘이 최초로 지하드를 선언하면서였습니다. 그러나 지하드라는 단어는 술탄이 곧 평화조약을 맺음으로써 20세기까지 수세기 동안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20세기의 지하드


지하드라는 용어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48년 제1차 중동전쟁 이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동전쟁은 1948년~1973년 4차례에 걸쳐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간에 벌어진 전쟁입니다. 그리고 제1차 중동전쟁은 이스라엘이 독립선포를 하여 중동의 국가들과 맞붙게 된 첫 전쟁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승전국들의 정책으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먼 과거에나 중동인이었지 종교는 유대교이며 정신은 서양인들과 같았기에 결국 팔레스타인의 이슬람인들과 충돌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다 결국 유대인들이 독립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때 아랍인들은 이러한 원인을 제공한 UN과 서방국가들에 대한 원망을 지속적으로 쌓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중동에 관한 서방국가, 특히 미국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기 시작합니다. 미국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스라엘을 교묘히 지원하면서 중동의 아랍국가들을 남모르게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권력층에 유대인들이 많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지원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중동의 풍부한 석유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이후 미국은 이라크를 시작으로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에 군대를 파견하기도 하면서 지속적으로 아랍국가들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자부심이 강한 이슬람인들에게는 자신들의 땅(석유)을 넘보는 서방 이교도들의 침략이 시작된 것입니다.

지하드, 9·11테러, 그리고 이라크전쟁


모두가 알듯이 미국은 1차(다국적군 vs 이라크), 2차(미국 vs 이라크) 걸프전쟁을 압도적으로 승리하였습니다. 1차 걸프전의 원인은 이라크가 먼저 쿠웨이트를 침공했기 때문입니다. 이라크와 쿠웨이트는 국경지역에 유전지대를 두고 분쟁이 지속적으로 발생해왔습니다. 그러다 8년에 걸친 이라크­­-이란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한 이라크가 이 여세를 몰아 쿠에이트를 침공했습니다. 이에 다국적군이 쿠웨이트의 주권을 회복한다며 다국적군을 형성하여 이라크와의 전면 전쟁을 벌인 것입니다.

아랍국가입장에서 보면 이라크와 쿠웨이트는 같은 종교간의 싸움이기에 지하드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1차 걸프전은 엄연히 서양의 이교도들이 감히 자신들의 땅에 군대를 들인 것입니다. 그것만 해도 화가 나는데 2차 걸프전(이라크전쟁)에서는 아예 이슬람국가(이라크)를 점령해버리지요.



1, 2차 걸프전이 아니더라도 서양은 이슬람국가들이 핵무기를 가지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압박하고 또 압박했습니다. 한마디로 정치적으로 지속적으로 간섭해온 것이지요. 결국 오사마 빈라덴의 알카에다라는 테러집단이 끔찍한 재앙이었던 9·11테러를 미국 한복판에서 벌이고 맙니다. 알카에다는 비행기를 납치하여 서양경제의 중심인 세계무역센터와 미국의 국방부인 펜타곤에 충돌시켜 3천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발생시켰습니다.

오사마 빈라덴은 '미국인을 죽이는 것은 이슬람교도의 의무'라고 말할 정도로 미국을 증오했습니다. 그래서 9·11 테러 이전에도 오사마 빈라덴과 알카에다는 미국 정부에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극도로 분노하여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은 첫 번째 목표로 9·11 테러를 일으킨 장본인인 오사마 빈라덴을 잡기위해 오사마 빈라덴을 보호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습니다. 뒤이어 대량살상무기를 제조,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라크에도 침공하였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정부인 탈레반을 무너뜨리고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처치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아프가니스탄 침공시에 오사마 빈라덴도 처치하였습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중동의 이슬람인들에게 끝없는 공분을 사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빈라덴을 넘겨주지 않았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쳐도 이라크전쟁의 명분인 대량살상무기(WMD)는 결국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은 정신적 지주 중의 한명이었던 빈라덴의 사망에 대한 분노와 함께 미국이 오직 막대한 석유를 넘보고 이라크를 침공했다고 주장하며 이교도들에 대한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을 곳곳에서 선언합니다.


파리테러의 배후? IS 무장단체


IS는 요르단 출신의 알자르카위가 1999년 만든 ‘유일신과 성전’이라는 조직입니다. 그리고 2004년 이라크알카에다(AQI)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습니다. IS가 어떤 단체인지 모르신다면 한국인 김선일씨를 납치하고 참수해 우리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던 조직이라고 하면 아실 것입니다.



AQI는 알자르카위가 2006년 6월 미국의 공습으로 사망하자 알자르 카위와 함께 조직을 지휘했던 알바그다디를 중심으로 재편해 2006년 10월에 ‘이라크이슬람국가(ISI)’로 개명하였습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이슬람국가’라는 표현을 씁니다. 다른 과격 테러조직들이 외부의 적(서양)과의 싸움에 집중할 때, ISI는 철저히 이라크 내부를 장악하기 위해 노력하며 미국이 무너뜨린 후세인 정권의 잔존세력들을 흡수했습니다. 알바그다디가 원래 후세인 정권에서 장교를 지냈습니다. 그들은 교도소를 침입해 죄수들을 탈옥시켰고, 이들은 ISI의 충실하고 과격한 조직원이 됐습니다.

ISI는 2010년 말부터 2011년 초까지 중동 지역에 불어 닥친 ‘아랍의 봄’을 기회라고 여겼습니다. 아랍의 시민들은 민주화를 꿈꾸며 하나로 뭉쳐 독재정권에 저항했지만, 간판만 잠깐 바뀌었고 또다른 독재세력이 바로 권력을 잡았습니다. 특히 시리아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위는 내전으로 바뀌었고, ISI는 이 혼란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때만 해도 테러단체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알카에다는 ISI에게 시리아 내전에서 반정부 세력을 지원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또한 ISI는 2013년 4월 조직의 이름을 ‘이라크와 레반트 이슬람국가(ISIL)’이라고 바꿨는데 알카에다는 조직의 해체를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알바그다디는 명령을 듣지 않고 알카에다의 특사를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결국 알카에다는 공개적으로 이들을 비난하였고(똥 묻은개가 겨묻은 개를...) 절연을 선언하였습니다.

독자세력이 된 ISI는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세력을 불리며 결국 2014년 6월 9일 이라크 최대 유전도시 모술을 장악하는데 성공하고 국가수립을 선포합니다. 이들은 이교도가 아닌 이슬람인이라도 IS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전부 적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지하드가 이제는 이슬람인에게도 그 화살촉을 겨누게 된 것이지요.


IS의 활동


국가수립을 선포한 뒤에 IS는 인간이 할수 있는 가장 과격하고 잔인한 테러를 하였습니다. 외국인들과 이집트의 콥트교도들(기독교)을 참수했고 이 장면을 촬영해 공개했습니다. 게다가 국제연합군에 참여한 요르단의 파일럿을 납치해 철장에 넣고 산 채로 화형시키기까지 합니다. 화형은 이슬람인들도 잘 하지 않는 끔찍한 처형방식입니다. 또한 그들은 이슬람 율법에 따르지 않은 것들은 모두 이단이라고 규정하며 시리아의 2000년 유적도시 팔미라를 장악하고 인류사의 중요한 유물들을 폭파하거나 처형장소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IS는 기타 다른 테러조직들과 달리 홍보를 매우 화려하게 합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조직원을 모집하는 동영상과 자신들이 한 일들을 편집하여 만든 UCC 등을 함께 홍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선전에 걸려들어 우리나라의 '김군'도 IS에 가담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서양의 여러나라에서도 이들의 선전에 속아 IS에 가담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지경입니다.



얼마전, 2015년 10월 31일 이집트 시나이반도를 출발해 러시아로 향하던 여락기가 테러로 의심되는 폭발로 추락하였습니다. 이 테러로 안타깝게도 탑승객 224명이 모두 숨졌습니다. IS연계조직이라고 주장하는 이집트 시나이반도 무장조직은 자신들의 테러라고 주장하고 있고, 미국과 영국, 러시아 정보당국도 IS의 테러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오늘 파리에서 테러가 발생하였습니다. IS는 14일 공식 성명을 내고 파리 연쇄 테러를 자신들이 저질렀다고 밝혔습니다. IS가 앞서 공개한 동영상에서 한 조직원은 IS를 상대로 한 미국 주도의 공습에 참여하는 한 프랑스는 평화롭게 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한국에서의 테러 가능성?


10월 25일 IS의 연계조직인 안사르 알딘이 서울 삼성동 코엑스를 폭파하겠다는 경고를 SNS에 올려 코엑스의 경계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오늘 파리 테러가 보도되기 전까지는 잠깐만 반짝하고 일반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파리의 테러로 인해 사람들이 다시금 코엑스 테러 예고에 관심을 쏟게 된 것이지요. 엄밀히 말하면 우리나라는 절대로 테러의 사각지대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엄연히 한미동맹으로 인한 미국의 우방국이며 이슬람에게는 이교도이기 때문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 공병부대를 파견하기도 했었고요.



테러단체들이 볼때 테러에 대해 다소 관심이 옅은 우리나라는 최적의 타겟입니다. 공항의 검문검색이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굉장히 그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승객들이 비행기에 타고 하늘에 있을 때에야 티켓을 바꾼걸 알아차릴 정도면 말 다했다고 봅니다.

사실 일반인들이 테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경계를 해봤자 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일단은 코엑스에 대한 테러 예고가 나온 이상 코엑스에 대한 접근을 조심하고(코엑스의 상인분들께 죄송하지만) 수상한 행동을 하는 낯선 사람이 있으면 바로 112에 신고하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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